[천자 칼럼] 反轉의 한·폴란드 관계

입력 2022-07-31 17:18   수정 2022-08-01 00:20

한국 방산 수출의 전기를 마련해준 폴란드는 우리와 우호 관계로 출발한 나라는 아니었다. 두 나라가 국제무대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처음 얽힌 것은 1948년 파리 유엔 총회에서다.

그해 8월 15일 건국한 신생 대한민국은 유엔에서 독립국 승인을 받기 위해 9월 대표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소련 대표인 안드레이 비신스키 외무장관의 노골적인 필리버스터 공작에 가로막혀 3개월째 안건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총회 마지막 날인 12월 12일에도 비신스키의 2시간 연설에 이어 소련 위성국가 대표들의 연속 발언에 의한 필리버스터 계획이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비신스키가 15분 만에 극심한 치통과 함께 성대결절이 와 병원에 실려 가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이 틈에 안건이 상정돼 찬성 48표, 반대 6표, 기권 1표로 건국을 인정받았다. 이때 반대 6개국 중 하나가 폴란드다.

이렇게 악연으로 시작한 양국 관계는 40여 년 뒤인 1989년 수교 이후 빠르게 발전했다. 1993년 대우가 전자와 자동차 분야 투자로 폴란드를 세계 경영의 교두보로 삼으면서 활발한 교역이 이뤄졌고, 1994년 바웬사 대통령이 방한해 김영삼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면서 외교 관계도 급진전했다. 폴란드는 현재 한국의 유럽 5대 수출국의 하나로,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폴란드는 한국 이상으로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18세기 말 러시아·오스트리아·독일 3국에 123년간 분할 지배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독일의 폴란드 그단스크(독일명 단치히) 침공이 2차 대전의 발화점이었으며,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지명 오슈비엥침의 독일어 발음이다. 미·소 냉전 시대에는 내내 소련의 위성국가였다. 그러나 오랜 식민 지배에도 끝까지 언어를 지켜냈으며, 소련 위성국가 중 가장 먼저 민주화 운동에 성공하는 등 끈질긴 저항 정신을 지니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군홧발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또다시 자신들에게 넘어올 수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에 발 벗고 나섰으며, 이번 한국산 무기 대량 구입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따른 군사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폴란드 국방장관은 “한국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70년간 전쟁을 준비한 국가로, 무기 품질이 최상급”이라고 했다. 동병상련 처지의 두 나라는 국방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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